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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전의 골목길을 걷는 일

Joel Renk글쓴이 Joel Renk··읽는 데 약 1분

한국 도시는 지워지고 다시 쓰이는 속도가 유별납니다. 북아현동만 봐도 남쪽 골목은 지도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렵고, 북쪽에 남은 골목도 절반은 이미 뭉개졌어요.

이 글은 재개발을 반대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뒤에서 그 얘기는 따로 하겠습니다. 먼저 짚고 싶은 건 훨씬 단순한 사실이에요. 골목은 걷기에 가장 좋은 형태인데,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골목이 왜 걷기에 좋은가

이유가 세 가지 있어요. 전부 우연이고, 전부 설계된 적이 없습니다.

블록이 짧습니다. 골목은 계획도로가 아니라 필지가 생기고 남은 틈이라서 간격이 촘촘해요. 100미터마다 갈림길이 나온다는 건, 100미터마다 선택지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대로는 500미터를 걸어도 결정할 일이 없어요.

차가 못 들어옵니다. 폭이 좁아서 물리적으로 안 됩니다. 신호도 없고 건널목도 없어서 걷는 리듬이 끊기지 않아요.

목적지가 없습니다. 이게 핵심이에요. 골목에는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10년을 같은 동네에 살아도 자기 집 골목 말고는 한 번도 안 들어가 봅니다. 안 가본 곳이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는 뜻이고, 그건 도시에서 흔한 일이 아니에요.

지도에서는 이렇게 보입니다

걸으면 주변 30미터 폭이 드러납니다. 양옆으로 15미터씩이요.

대로를 따라 5킬로미터를 걸으면 0.15제곱킬로미터가 열립니다. 골목으로 5킬로미터를 걸어도 숫자는 똑같아요. 다른 건 겹침입니다.

큰길은 이미 다니는 길이라 새로 열리는 게 거의 없어요. 반면 골목은 블록 안쪽이라 큰길과 한 번도 겹치지 않습니다. 같은 5킬로미터가 통째로 새 면적이 돼요.

여기에 한국 특유의 사정이 하나 더 붙습니다. 블록 안쪽은 위성사진으로도 잘 안 보이고, 로드뷰도 안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골목은 직접 걷는 것 말고 알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원리는 현실판 전장의 안개에, 면적 계산은 내 도시의 몇 퍼센트나 걸었는지에 정리해 뒀어요.

기록이 장소보다 오래 남는 경우

여기가 이 글을 쓴 이유입니다.

보통 걷기 기록은 장소보다 시시합니다. 산은 100년 뒤에도 그대로 있고, 내가 언제 올랐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골목은 반대예요. 5년 뒤에 그 길이 없을 확률이 꽤 높습니다. 그러면 걸어 둔 선은 없어진 길의 기록이 됩니다. 사진은 한 지점을 남기지만, 걸은 경로는 그 동네의 형태를 남겨요. 어디가 막혔고 어디가 뚫려 있었는지, 어느 골목이 어느 골목으로 이어졌는지.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동네 한 바퀴 도는 김에 큰길 대신 안쪽으로 들어가면 돼요. 다만 시한이 있는 일이라는 것만 알고 하면 좋겠어요.

네 가지 방법

  • 큰길은 이동, 골목은 귀가. 갈 때는 큰길로 빠르게, 올 때만 안쪽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쪽만 바꾸면 됩니다.
  • 막다른 길을 인정하세요. 골목의 절반은 막혀 있어요. 되돌아 나오는 게 낭비처럼 느껴지지만, 돌아 나오는 길도 처음 걷는 길입니다.
  • 재개발 예정지부터. 시한이 제일 짧은 곳이니까요. 구청 고시나 조합 설립 소식이 나온 동네가 우선순위입니다.
  • 낮에 가세요. 밤 골목은 어둡고 사람이 없고 길이 고르지 않아요. 이건 안전 문제라 타협할 부분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덧붙일 것

재개발이 나쁜 일이라고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래된 골목은 아스팔트가 벗겨지고 계단이 부식돼서 미관만이 아니라 주민 안전까지 위협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아요. 거기 사는 사람에게 골목은 정취가 아니라 생활 조건입니다. 바깥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그대로 두자"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고, 이 글은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어차피 바뀔 거라면, 바뀌기 전에 한 번은 걸어볼 만합니다.

그리고 안개는 실외에서 GPS로만 걷힙니다. 골목이 너무 좁거나 건물이 높으면 GPS가 튈 수 있는데, 이건 기기의 한계라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 없는 부분이에요. Fogbreaker는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무료입니다.

우리 동을 단위로 완주해 보는 얘기는 인증서 없는 완주에 있어요. 골목은 그 완주에서 가장 오래 남는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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