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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서 없는 완주, 우리 동네부터

Joel Renk글쓴이 Joel Renk··읽는 데 약 1분

한국에서 걷기는 대체로 완주와 인증의 형태를 띱니다. 스탬프북이 있고, 코스마다 도장을 찍고, 다 채우면 완주 인증서를 받아요. 국립공원도, 등대도, 코리아둘레길도 같은 구조예요.

이게 왜 통하는지 한 번쯤 짚어볼 만합니다. 풍경 때문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풍경만 놓고 보면 집 앞 하천길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하천길은 세 번 나가고 그만두고, 둘레길은 끝까지 갑니다.

서울둘레길이 실제로 하는 일

숫자부터 보면 이래요. 서울둘레길은 총 156.5킬로미터고, 원래 8개였던 코스를 21개로 쪼갰습니다. 코스당 평균 8킬로미터 안팎, 세 시간 정도예요. 구성은 숲길 84.5킬로미터, 하천길 32킬로미터, 마을길 40킬로미터입니다.

코스가 바뀌는 지점마다 스탬프함이 있고, 다 모으면 완주 인증서를 받습니다.

여기서 걷기를 지탱하는 건 사실 세 가지예요.

  • 경계. 어디까지가 코스인지 정해져 있어요. 끝이 있습니다.
  • 목록. 21개라는 유한한 숫자가 있어요. 몇 개 남았는지 셀 수 있습니다.
  • 증거. 도장과 인증서. 내가 했다는 게 나 말고도 남아요.

8킬로미터를 걷는 게 어려워서 사람들이 못 하는 게 아니에요. 8킬로미터를 걷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 못 견디는 거죠.

동네 산책에 없는 세 가지

그래서 동네 한 바퀴가 안 쌓입니다.

경계가 없어요. 어디까지가 우리 동네인지 아무도 안 정해줬습니다. 목록도 없어요. 남은 골목이 몇 개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증거도 없고요. 오늘 처음 가본 길로 돌아왔든 3년째 같은 길로 돌아왔든, 만보기에 찍히는 숫자는 똑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둘레길까지 갑니다. 완주할 수 있는 게 거기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동을 코스로 만들면 나오는 숫자

계산을 한번 해볼게요.

서울은 605제곱킬로미터고 행정동은 400곳이 넘습니다. 평균을 내면 한 동이 1.5제곱킬로미터가 채 안 돼요. 대략 1.4제곱킬로미터쯤 됩니다.

걸으면 대략 30미터 폭이 드러납니다. 양옆으로 15미터씩이요. 그러면 1.4제곱 킬로미터를 겹치지 않고 완전히 훑는 데 필요한 거리는 이렇게 나와요.

1,400,000 m² ÷ 30 m = 약 47,000 m = 약 47 km

실제로는 같은 길을 계속 다시 지나기 때문에 70킬로미터쯤은 걸어야 할 거예요.

서울둘레길 완주가 156.5킬로미터입니다. 우리 동 하나를 완주하는 건 그 3분의 1 정도고, 현관문 밖에서 시작해요.

이 비교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 전부입니다. 완주할 만한 코스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도 우리 동을 코스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에요.

경계와 목록과 증거를 붙이는 법

안개 지도가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겁니다. 전략 게임에서 쓰는 방식을 실제 도시에 적용한 거예요. 지도가 전부 덮인 채로 시작하고, 걸으면 내 주변 한 줄만큼 안개가 걷힙니다. 자세한 설명은 현실판 전장의 안개에 정리해 뒀어요.

Fogbreaker의 영역 기능은 여기에 행정 경계를 얹습니다. 국가, 지역, 시, 구, 동까지 다섯 단계로 나뉘고, 각각 전체 면적과 내가 걷어낸 면적, 그리고 퍼센트가 나와요. 경계는 실제 행정 경계라서 내 GPS 주변에 원을 그린 게 아니라 진짜 우리 동입니다.

그러니까 경계가 생기고, 남은 면적이라는 목록이 생기고, 퍼센트라는 증거가 생겨요. 도장은 없지만 나머지 두 개는 그대로고, 코스는 집 앞에 있습니다.

실제로 하는 방법 네 가지

  • 동 하나만 정하세요. 서울 전체는 숫자가 안 움직여서 재미가 없어요. 사는 동 하나로 좁히면 한 번 나갈 때마다 퍼센트가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 평행한 골목으로 돌아오세요. 늘 가던 길에서 50미터 옆에 안 가본 길이 거의 항상 있어요. 시간은 똑같이 쓰고 면적은 두 배가 됩니다.
  • 왕복으로 가세요. 순환 코스는 설계상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납니다. 안 가본 방향으로 쭉 갔다가 그대로 돌아오는 쪽이 같은 거리로 더 넓게 훑어요.
  • 아파트 단지 안과 골목 안쪽을 지나세요. 큰길만 다니면 블록 안쪽은 영원히 안 열립니다. 남은 면적은 거의 다 거기에 있어요.

솔직하게 짚을 것

인증서는 안 나옵니다. 도장도 없어요. 서울시가 발급해 주는 종이 한 장이 주는 느낌을 앱 화면이 그대로 대체하지는 못해요. 그건 인정하고 가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둘레길을 대신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156.5킬로미터짜리 숲길과 하천길은 동네 골목이 줄 수 없는 걸 줍니다. 다만 둘레길에 못 가는 주중 저녁 다섯 번이 그냥 버려지고 있는데, 거기에도 완주할 게 있다는 얘기예요.

마지막으로 안개는 실외에서 GPS로만 걷힙니다. 러닝머신과 실내는 걸음 수는 올라가도 지도는 그대로예요. Fogbreaker는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무료고 영역 기능도 전부 무료입니다.

꾸준히 나가는 게 문제라면 연속 기록 쪽을 먼저 보셔도 좋아요. 코스는 이미 집 앞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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