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시를 걸을 때 실제로 가장 자주 하는 결정은 이겁니다. 단지를 가로지를까, 돌아갈까.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아파트에 사는 가구가 **53.9%**입니다. 절반이 넘어요. 그러니까 이 결정은 취향 문제가 아니라 한국 도시의 기본 구조입니다.
단지 하나가 얼마나 큰가
숫자로 보면 감이 옵니다. 송파 헬리오시티는 대지면적이 34만 6,570제곱미터, 9,510세대, 84개 동이에요. 여의도공원의 약 1.5배입니다. 단일 단지로는 국내에서 가장 세대수가 많습니다.
이 면적을 정사각형으로 놓으면 한 변이 약 590미터입니다. 계산은 이렇게 돼요.
- 두 변을 따라 돌아가기: 약 1,180미터
-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기: 약 830미터
차이가 350미터, 비율로는 **29%**입니다. 한 번에 5분이고, 출퇴근으로 하루 두 번, 일 년이면 40시간쯤 됩니다. 단지 하나 때문에요.
헬리오시티가 유별나게 큰 건 맞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똑같아요. 단지는 블록이 아니라 슈퍼블록이고, 슈퍼블록은 도로망에 구멍을 냅니다.
열린 단지와 닫힌 단지는 다른 도시입니다
같은 크기의 땅인데 결과가 정반대예요.
열려 있으면 지름길이자 공원입니다. 단지 안에는 차가 거의 안 다니고, 산책로가 깔려 있고, 나무가 있고, 신호등이 없어요. 바깥 대로변보다 걷기 좋은 게 보통입니다.
닫혀 있으면 2.4킬로미터짜리 벽입니다. 그리고 그 벽을 따라 난 인도는 한쪽이 담장이라서, 도시에서 가장 지루한 종류의 보행로가 돼요.
이게 새로운 논의는 아닙니다. 대구는 1996년에 서구청과 경북대병원을 시작으로 담장 허물기를 했고, 1999년부터는 시민단체가 주도해서 확산됐어요. 학교, 구청, 병원 같은 공공기관 170곳에 민간 321곳을 더해 491곳이 참여했습니다. 담장을 없애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에 이미 30년 치 사례가 있는 셈이에요.
지도에서는 어떻게 보이나
걸으면 주변 30미터 폭이 드러납니다. 양옆으로 15미터씩이요.
단지를 돌아서 두 변을 걸으면 1.18킬로미터니까 0.035제곱킬로미터가 열립니다. 다만 그 면적은 이미 다 아는 길이에요. 매일 지나가니까요.
단지를 가로질러 830미터를 걸으면 0.025제곱킬로미터가 열립니다. 숫자는 더 작아요. 그런데 이쪽은 거의 전부가 처음 보는 면적입니다. 단지 내부는 밖에서 보이지 않고, 지도에서도 건물 배치만 나오지 실제로 어디가 뚫려 있는지는 안 나오거든요.
더 짧게 걷고 더 많이 여는 경우라서 좀 특이합니다. 보통은 반대죠.
원리는 현실판 전장의 안개에 있고, 면적을 행정구역별 퍼센트로 바꾸는 기능은 내 도시의 몇 퍼센트나 걸었는지에 정리해 뒀어요.
네 가지 방법
- 퇴근길에만 가로지르세요. 출근길은 시간이 빠듯해서 결국 익숙한 길로 돌아갑니다. 여유가 있는 쪽만 바꾸면 돼요.
- 입구 위치를 먼저 외우세요. 단지의 실제 난이도는 크기가 아니라 출입구 개수입니다. 네 면에 문이 다 있는 단지와 정문 하나뿐인 단지는 완전히 다른 장애물이에요.
- 단지 안 산책로를 쓰세요. 대부분의 단지에는 한 바퀴 도는 산책로와 운동기구가 있습니다. 원래 주민용이지만, 통과 동선으로 쓰기에도 제일 편한 길이에요.
- 단지를 이어 붙이세요. 단지 세 개가 붙어 있는 동네라면, 대로로 나가지 않고 단지에서 단지로 넘어가는 경로가 보통 존재합니다. 그게 그 동네에서 제일 조용한 길입니다.
솔직하게 덧붙일 것
단지 안은 사유지입니다. 입주민의 공동 재산이고, 통행은 권리가 아니라 관행으로 열려 있는 거예요.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단지가 늘고 있고, 차단기와 CCTV가 있고, 경비원이 제지하면 그건 그분의 업무입니다. 막으면 돌아가세요. 이 글은 닫힌 단지를 뚫고 들어가라는 얘기가 전혀 아닙니다.
닫는 쪽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안전, 소음, 쓰레기, 관리비로 유지하는 시설을 외부인이 쓰는 문제. 밖에서 "열어라"라고 말하는 건 관리비를 안 내는 사람의 입장이에요.
그리고 안개는 실외에서 GPS로만 걷힙니다. 고층 동 사이에서는 신호가 튀어서 경로가 부정확해질 수 있어요. Fogbreaker는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무료입니다.
단지가 슈퍼블록이라면, 그 사이에 남은 좁은 길이 골목길이고, 동 단위로 완주해 보는 얘기는 인증서 없는 완주에 있어요.
